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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기각땐 수사 차질' 뒤에 숨은 전지적 검찰 시점

기사승인 2019.10.14  10: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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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기자, 중앙일보 법조팀장, JTBC보도국장 등을 역임했다. 균형잡힌 시각과 예리하고 명쾌한 논평으로 유명한 언론인입니다>

구속영장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동생에 대해 청구된 영장이 기각되면서다. 영장 전담 판사의 성향에까지 확대경을 대고 있다.

발부=유죄도, 기각=무죄도 아닌데 
주요 사건마다 정치적 시비 반복
'구속은 응징'이란 법 감정 편승하는
구속 만능주의가 검찰권력 키운다

주요 사건 때마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는 왜 그토록 누가 구속되고 구속되지 않는지에 주목하는 걸까. 영장실질심사 법정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을 찾았다.

흥미진진한 승부가 된 영장심사 결과

지난주 목요일(10일) 오전 10시 10분 서울중앙지법 청사 뒤쪽 출입구. 취재기자와 영상 취재기자, 법원 직원 등 30여명이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27분 “곧 들어옵니다”는 말과 함께 기자들이 일제히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었다.

양복 차림의 남성이 들어서자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버닝썬 사건 당시 ‘경찰총장’으로 불렸던 윤모(49) 총경이었다. 출입구 앞에서 대기 중이던 기자 두 명이 질문했지만 윤 총경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검색대를 통과했다.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321호 법정 앞에선 방호원들이 기자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영장심사는 일반 재판과 달리 비공개다. 오전 11시 36분쯤 심사가 끝났다. 법정을 나온 윤 총경 변호인 주위로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피의자는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관해 묻자) 사실이 아닙니다.”

윤 총경은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기 위해 구치소로 이송됐다. 결과는 이날 밤 10시가 넘어서 나왔다. ‘범죄 혐의의 상당 부분이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는 구속이 한국의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두가 구속영장 발부되느냐, 기각되느냐에 주목한다. 무슨 흥미진진한 승부의 뚜껑이 열리는 것처럼.

‘범죄 응징’ 수단으로 인식되는 구속

현행 법체계에서 구속은 피고인의 출석과 형 집행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영장이 발부됐다고 유죄가 되지도, 기각됐다고 무죄가 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구속 여부가 부각되는 것은 구속을 사실상의 형벌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일단 구속되면 나중에 무죄를 받더라도 ‘범죄자’란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는다.

‘구속은 범죄에 대한 응징’이란 인식은 영장 발부 여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특히 정치적 사건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에 격렬한 공방이 오간다. 올 들어서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발부(1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기각(3월),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기각(7월) 등 영장에 대한 법원 결정이 나올 때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번에 조국 장관 동생의 영장이 기각되자 한국당은 “사법부의 수치로 기억될 것”이라며 담당 판사인 명재권 부장판사를 비판했다. 민주당은 “무리한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고 맞섰다.

언론의 반응도 매체마다 달랐다. 다만 특이하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영장 기각 사실을 전하면서 ‘검찰 수사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보도한 것이다. 한 전직 대법관은 이렇게 말한다.

“보수 매체든, 진보 매체든 ‘수사 차질’은 같아요. 영장이 기각되면 수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건 구속을 해야 한다는 의미 아닌가요? 영장이 기각됐다고, 한 사람 구속 못 했다고 차질이 생길 수사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영장심사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

원칙은 원칙일 뿐일까.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지만 현실에서 구속은 수사 기법의 하나로 활용된다. 구속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자백을 받거나 여죄를 추궁하거나 관련자들 이름을 대라고 압박한다. 구속 후 검사가 추가 조사를 이유로 피의자를 매일 검찰청으로 불러서 변호인이 접견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의 방어권 침해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의 얘기다.

“영장 얘기가 나오니까 ‘차라리 인정하고 불구속 재판받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공직자도 있습니다. 돈 받은 적은 없지만 구속되면 자기 인생이 무너질 것 같다는 거죠. 어떤 의뢰인은 구속 후 ‘변비가 생겨서 닷새나 화장실을 못 갔다’고 하소연하더군요. 구속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그만큼 크고 무섭습니다.”

문제는 영장심사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사실이다. 변호인들은 구속영장 청구서 사본만 보고 법정에 들어간다. 수사기록을 검토하지 못해 다른 관련자들이 어떻게 진술했는지는 물론이고 피의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변론할 때도 적지 않다.

한 변호사는 “영장심사 때 검사가 판사에게 의견서를 내곤 하는 데 구속 필요성과 관련 진술을 요약·정리하고, 추가 수사할 제2, 제3의 혐의를 적어놓기도 한다”며 “유죄의 예단을 심는 것으로 명백한 파울”이라고 했다. 검찰이 구속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검사의 공명심 측면을 부정할 수 없어요. ‘손맛’도 있고요. 하지만 법원이 너무 엄격하게 혐의 입증을 요구하면서 영장심사가 정식 재판처럼 운영되는 탓이 큽니다.”

‘무기 대등’ 원칙이 근대 재판의 정신

공개된 재판에서 검사와 피고인이 ‘무기 대등’의 원칙에 따라 싸우도록 해서 진실을 가리자는 게 근대 형사재판 제도의 정신이다. 지금처럼 범죄에 대한 응징을 수사 단계로 앞당겨놓는다면 당신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사건 당시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가장 잘 알고 있을 당신이 구치소에 갇혀 있다면 아무리 용한 변호사를 써도 누명을 벗기 쉽지 않다.

보수 쪽 인사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면 진보진영에서 비판하고, 진보 쪽 인사 영장이 기각되면 보수진영에서 반발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그렇게 공방이 오가는 사이 구속 만능주의는 뿌리내리고, 검찰권력은 커진다. 영장심사, 구속적부심, 보석, 1심, 2심…. 사람 몸을 인질처럼 붙잡아놓고 단계마다 풀어줄지, 말지 따지는 현행 제도는 전관예우의 젖줄이기도 하다.

‘기각 땐 수사 차질’이란 상투적 표현 뒤엔 검찰중심주의가 있고, 언론의 전지적 검찰 시점이 있고, 범죄자로 쉽게 단정 짓고 돌부터 던지려는 마음들이 있다. 그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영장이 발부됐을 때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한 적이 있는가. 검찰개혁의 핵심은 ‘구속 수사’ 시스템을 혁파하는 데 있다.

'영장 전담' 경험 판사의 시각→ “논란 계속되면…판사 입장선 애매할 땐 발부하는 게 편하죠”

형사소송법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판사들은 구속영장 청구서 앞에서 무엇을 고민할까. 영장 전담 판사로 근무했던 부장판사에게 물었다.

Q 영장 검토할 때 어떤 것을 고려하나 ?

A “우선 범죄 혐의가 소명돼야 하는데, 얼마나 소명돼야 하느냐에 관한 판단은 판사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압수수색으로 증거가 확보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증거인멸보다 도망할 염려를 중시한다.”

Q ‘혐의가 인정된다’면서도 기각을 하기도 하는데.

A “영장에 기재된 혐의가 여럿일 때가 많다. 혐의가 A, B, C 있는데 B, C가 소명됐다고 해도 주요 혐의인 A를 놓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판사로선 발부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검사들은 혐의가 여러 개 있으면 (사안이) 중대해진다고 믿는 것 같은데, 판사들은 명확한 혐의만 영장에 넣어주길 바란다.”

Q 조국 장관 동생의 경우 돈 전달한 사람은 발부하고 돈 받은 사람은 기각했다.

A “도망이나 증거인멸 염려는 피의자들마다 다르다. 주범, 종범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세 명 중 한 명만 기각된 것은 군색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주요 혐의(웅동학원 허위소송)의 다툼 여지 부분을 주목한 게 아닌가 싶다.”

Q 구속영장 기각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A “영장을 발부하면 검찰이 부각되지만, 기각하면 판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애매할 땐 발부하는 게 판사로선 편하다. 그 피해는 피의자들이 보게 되겠지만….”

※ 이 칼럼은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에서 옮겨왔습니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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