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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왜 출마 안 하십니까?

기사승인 2022.05.09  15: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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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양득 / 에이펙 아카데미 & 어학원장

올봄부터 신생 언론사를 운영하는 베테랑 기자가 “올해는 왜 출마를 안 하죠?”라고 물어왔다.

필자의 대답은 “턱걸이를 못 해서요” 마스크 때문에 못 들었는지 아니면 생뚱맞은 대답이라서 그런지 재차 물어보아서 “아, 예 준비가 되지를 못해서 출마하지 않습니다” 그 대답에 고개를 끄떡이며 헤어졌다.

2011년 4월에 필자는 2010년에 이어 고현, 장평, 수양, 상문동을 선거구로 도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서 연거푸 낙선하였다.

2011년은 보궐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언론 및 유권자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여당의 후보로는 박행용 전 거제시자치행정국장이 공천을 받았고 야권 단일후보로는 이길종 민노당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공천에 쓴맛을 본 김창성 전 시의원은 무소속 도전을 감행해 일찌감치 무소속 진을 치고 있던 필자와 이태재 전 시의원까지 5파전이 되었다. 본인에게는 승산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유불리를 따지고 싶지 않은 판단이 섰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목청껏 “필승”을 외치다 보니 많은 분께서 해병대 몇 기냐고 물어보곤 하였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되고 승선한 46명의 장병이 전사하는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천안함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해군의 전통적 구호인 필승을 부르짖었다. 천안함 격침 1년이 지난 시점인 2011년 3월에도 당시 야권을 중심으로 천안함 음모론이 심상찮게 언론에 오르곤 했다.

2011년 4월 재선거에서는 카우보이모자의 필승 구호와는 차별화된 이색선거를 하고 싶었다. 생각해 낸 것이 턱걸이 운동이었다. 선거 유세차에 철봉을 용접해 선거 운동 전후로 매일 턱걸이를 해댔다. 13일의 선거 기간 동안 누적 1100여 회 정도 했을 것이다. 물론 아주 정확하게 했다.

턱걸이 선거 운동을 한 이유는 주변의 시선을 끌기보다는 턱걸이에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지난 2월 군사 전력이 월등히 우세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저항으로 아직 승리를 쉽게 예단하기 힘들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정규군인과 남녀 자원입대 병력이 보여주는 불굴의 항전 원천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튼튼한 신체에서 온다고 믿는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공약이었던 병사 월급 200만 원은 앞으로 모병제로 전환을 하겠다는 군 수뇌부의 복안을 짐작게 하는 근거이다. 아울러 모병제가 되면 전 국민은 전시 소집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격과 양궁 같은 스포츠가 대중화되어야 한다. 그러한 스포츠를 위한 평상시 운동이 턱걸이다. 당연히 견착 사격을 위한 튼튼한 어깨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어야 한다.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이 무섭지 않은 이유다.

재선거는 야권 단일화를 이룬 이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보수 및 중도 성향의 4명 후보와 진보 성향의 유일 후보와의 경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다섯 후보 중 필자는 약세로 분류되었다. 나이도 적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는 취지로 필자와 이래저래 인연이 닿는 두 후보 측에서 본인의 사퇴와 지지 선언을 간곡히 부탁해 왔다. 아마 어느 한 편을 들어서 마음을 바꾸었다면 당시의 선거 및 필자의 향후 선거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때 당시의 후보들은 이제 정치 일선에서 다 물러난 듯하다. 재선거 결과에 다급해진 당시 지역 국회의원의 긴급 호출이 있었다. 1년 후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 빨간불이 켜진 모양이었다.

2010년 선거에서 당시 여당의 공천 파동으로 시끄러웠는데 아무래도 공천 잡음으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았다. 당내의 사정도 친이계에서 친박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설상가상으로 재선거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의 선거구도 야권에 내주고 말았으니 말이다.

장평이 바라다보이는 중곡동 횟집에서 만났다. 첫마디가 재미있었다. “난 황원장이 또라이 인줄 알았어요!” 아마 2006년 시장선거에서 선친의 흉상을 메고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한 판단이었다.

그러한 솔직한 표현에 필자도 첫 대면이었지만 마음의 문이 열리고 오고 가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비록 선거에서 꼴찌를 했지만, 필자를 찍은 유권자들은 믿을 수 있는 표라고 칭찬을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오면 나를 도와주겠냐?” 고 물었다. “예”라고 대답을 하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지금 당장 엎드려서 팔굽혀 펴기를 해보라고 했다.평상시 국회의원 의정 활동도 깡으로 야무지게 한다는 세평이 무색지 않게 30여 회 이상 팔굽혀 펴기를 필자 앞에서 열심히 해 보였다.

필자도 의외로 잘 하는 모습에 당황했다. 조건을 한 가지 덧붙였다. 당선되어 재선의원으로 입시에서 사라진 “체력장”을 꼭 부활시켜 달라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막상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둘이 한 약속은 서로가 지키지 못했다.

선거 기간 동안 비가 와도 카우보이모자 덕에 선거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모자를 보관하고 있다. 아마 미국산 오리지날이라서 그런가 보다. 아쉽게도 턱걸이 모습의 사진이나 동영상은 필자가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4개 동 동민들의 기억에서 필자의 턱걸이 모습이 떠나지 않기를 소원한다.

어느덧 10여 년이 지나 그때의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필자가 다시 철봉에 매달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윤영' 전 국회의원 덕분이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거제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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