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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공'에 눌린 '늘공'...영혼까지 탈탈 털려서야

기사승인 2022.07.26  16: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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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천 거제저널 대표기자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 늘공은 '늘 공무원'을 빗댄 조어(造語)다.

늘공은 정년이 보장되지만, 어공은 대개 정해진 임기동안 공직에 잠시 머물다 간다.

지위와 역할도 다르다. 늘공은 경험이 풍부한 직업 관료다. 나름 조직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물론, 업무 전문성도 갖고 있다.

어공은 사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출직이나 정무직들이다. 이들은 전문성이나 열정보다 출세욕과 '오야붕'이나 정권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늘공은 싫건 좋건 어공의 지배를 일정기간 받도록 돼 있다. 다소 억울하지만 늘공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행정학자 랄프 험멜(Ralph P. Hummel)이 1977년에 펴낸 『관료적 경험(The Bureaucratic Experience)』에서 나온 용어다. 그는 관료제를 비판하면서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언급한 데서 유래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명박 정권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홍보처 업무보고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한 인수위원이 참여정부 언론정책을 따지면서 국정홍보처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자 국정홍보처장이 "우리는 영혼없는 공무원들"이라고 하소연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영혼없는 공무원'은 일종의 관용구처럼 늘공들이 소신이나 줏대없이 이리저리 정권이나 권력에 빌붙는 걸 빗댄 경멸과 자조섞인 말이 됐다.

새 정권이 들어선지 채 석달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요즘 일부 부처 늘공들이 왜 영혼이 없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서해에서 북한에 의해 피격된 어업관리단 공무원 사건이다. 당시에는 월북하려 했다고 주장하던 국가기관들이 최근 앞다투어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꼴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해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다니다 체포돼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북한 어민 2명의 북송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늘공들이 어공의 위세에 눌려서인지, 아니면 스스로 나섰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렸다는 180도 다른 처신에서 왜 그들에게 영혼이 없다는 건지 실감케 한다.

게다가 경찰을 마치 정권의 하수인처럼 부리려는 행안부장관의 뜬금없는 충성은 마치 나치의 선전장관인 '요세프 괴벨스'의 재현(再現)을 보는 것 같다. 

판사 출신 어공인 그는 '경찰서장 회의' 한번 한 걸 두고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는 폭탄 입방아를 쏟아내 구설에 올랐다. 야당은 이를 '전두환식 대응'이라며 한 줌의 재가 된 독재자까지 소환하고 있다.

늘공인 청장 후보자를 비롯한 경찰 수뇌부는 이런 장관의 기세에 궁지 몰린 쥐새끼 마냥 찍 소리도 못하는 꼴이 측은함을 넘어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모양새다. 

이유야 어떻든 '영혼없는 공무원'이야말로 이토록 무소신하고 카멜레온 같은 늘공을 비꼬거나, 자기합리화의 의미가 된 현실이 참으로 웃고프다.

사실 영혼 없는 존재가 어디 공무원뿐인가. 공무원 보고 영혼이 없다고 질타하는 언론사 기자들이나 일반기업체 회사원들은 과연 영혼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권세 휘두르다가 감옥 가고(權多身圄:권다신어), 이름 많이 날리다가 몸마저 더럽힌다(名多身汚:명다신오)". 늘공을 찍어누르며 요즘 기세등등한 천하의 어공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거제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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