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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나누는 기쁨은 두배"...수국 면장의 유별난 이웃사랑

기사승인 2022.12.26  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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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은퇴 후의 삶을 '제2의 인생'이라고 한다. 더구나 기대수명이 크게 높아진 요즘에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노년들이 많이 느는 추세다.

이들 중에 더러는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를 윤택하게 하거나 미뤄뒀던 자신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精進)의 보람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경륜은 사회발전의 에너지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통찰과 성찰이 빠지면 사회는 퍼석해지고 메마를 수 밖에 없다.

대를 이어 진화해 온 인간은 선대의 앞선 경험과 지혜에, 후대의 영민함이 더해져 여기까지 왔을 것이니 은퇴자의 노후가 영 허망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거제저널은 그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아름다운 노후를 설계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현재 치열한 삶을 사는 청장년들에게 삶의 가치를 깨우치는 데 작은 도움 차원에서 종종 만나볼 작정이다. -편집자-

"죽을 때 이거 다 갖고 갈 것도 아닌데...나중에 내가 가고 없더라도 수국꽃은 안 피겠나" 

그를 찾았을 때도 500평 남짓한 사과나무 과수원에 있었다. 늘 입는 카키색 작업복에 벙거지 모자 차림이었다. 쌀쌀한 추위 속에 끝물로 남은 사과 몇개를 들여다보며 "추위를 맞으면 달다고 해서 그냥 뒀더니...영 파이다"라고 연신 투박하게 내뱉었다.

냉골같은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니 주먹만한 사과 몇개씩 담긴 검정색 비닐봉투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이거는 아는 사람들 지나가는 길에 들르라고 해서 한 봉투씩 나눠주고 안있나"라고 자랑(?)했다.  

김용운(68) 전 사무관. 일운면장과 장승포·옥포1동장을 지내고 2013년 37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입바른 소리를 마다않던 그는 퇴직하던 날에도 오랜 공무원 경험을 엮은 '어제 그리고 내일'이라는 책 한권을 남기고 담담히 떠났다.

몇년 전 여름, 기자 지인이 마산서 놀러와 그가 퇴직 후 운영하는 펜션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소주 잔을 앞에 놓고 공직을 마친 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살아야 보람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기억에 새롭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지금껏 애들 공부시키고 가족들 잘먹고 살았다 아이가. 이제부턴 내가 어떻게 그걸 보답하느냐 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던 그는 몇년새 '나눔의 삶'에서 깨달음을 찾은 듯 영낙없는 농부로 변해 있었다. 둥그레한 구릿빛 얼굴은 더 넉넉하고 인자해 보였다.

그는 최근까지 해마다 손수 키운 배추와 무우 상당량을 지역의 소외된 곳에 기꺼이 나누고 있다. 봄에는 정성스럽게 키운 수국, 꽃무릇 등 각종 꽃·나무 모종을 무료 분양하거나, 지역 곳곳에 직접 심는 선행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직접 키운 2만주가 넘는 수국 모종을 포로수용소유적공원, 각 수변공원, 거제대학교, 장승포동, 옥포동, 일운면의 국도변 등에 심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상당할 정도인데도 대가없는 그의 꽃·나무 사랑 실천은 그칠 줄을 모른다.

2009년 일운면장 재직 시절, 무모하다는 주변의 반대에도 망치고개에서 구조라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일명 '황제의길' 양 쪽에 꽃무릇(상사화)를 심고 가꾸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또 반송이재에서 와현까지 이어지는 6.5km 임도에는 사비를 들여 왕벗나무 100여 그루를 구입해 지인들과 함께 땀흘리며 식재해 현재의 명품길로 만들어 놓은 일화도 있다. 

내년에는 널찍하게 터를 잡아 둔 종묘장에서 키운 수국과 꽃무릇을 3천여 평에 무료로 분양할 계획도 갖고 있다. 

왜 적잖은 돈을 들여 꽃과 나무를 애써 키워 무상으로 나눠 주느냐는 질문에 "고향 일운면장 시절 꽃과 나무를 구하려고 하니 너무 힘들었다"면서 "내가 퇴직하고 나면 취미도 살리고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뭘까 고민끝에 꽃과 나무를 잘 키워 이웃에 나누어 주는게 보람있겠다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수국(水菊)면장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재직시나 은퇴 이후에 하도 수국을 사랑하고 곳곳에 심는 통에 주위에서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이다.

수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유별나다. "봄꽃이 진 후 삼복더위에 지쳐가는 여름날 피는 수국의 가치는 높다. 한송이만 있는 모습보다는 군락을 이룰 때가 더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수국 예찬론이다.

그러면서 "사람도 혼자 있을때보다 여럿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수국의 그것과 꼭 닮았다"고 표현했다. 그의 숨은 노력 덕분인지 수국은 이제 거제의 여름꽃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역에서 기관장으로 은퇴한 어느 분은 가까이서 지켜 본 그의 선행(善行)을 거제저널 기고를 통해 이렇게 적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지역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에 기꺼이 자신의 노력과 재산을 내놓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는 한 병의 까스명수고 박카스다"

<사진 한장 찍자니 사과나무 옆에서 엉거주춤 한 컷>

서영천 대표기자 gjjn3220@hanmail.net

<저작권자 © 거제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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