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文 정부서 권력 핵심 칼날…검찰총장 사퇴 후 1년 만에 권력 정점
여소야대·김여사 의혹 등 코너 몰리다 불통으로 위기 자초
검사에서 국가원수로 직행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시간은 4일 탄핵으로 끝났다.
한국 정치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혜성처럼 등장해 최고의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추락도 한 순간이었다.
그는 첫 검사 출신이자 서울 출생 대통령, 그리고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은 첫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현직 대통령으로서 파면 당하는 불명예를 맞았다.
검찰총장 사퇴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불과 1년이 걸렸고, 취임 후 3년이 지나지 않아 왼전히 사그라들었다.
◇ 9수 만에 사시 늦깎이 합격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12월1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헌정사상 첫 서울 출생 대통령이었다. 윤 전 대통령 재임 중 작고한 아버지 고(故) 윤기중 연세대 교수의 고향은 충남 공주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윤 전 대통령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어울리기 좋아했다고 한다. 1991년 9수(修) 끝에 늦깎이 합격을 한 것도 이러한 성격 탓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검사 생활은 1994년 대구지검이 첫 시작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합격만큼이나 개인사도 늦어 52세이던 2012년 3월 김건희 여사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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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 대학시절. 사진=연합> |
◇ "사람에 충성 안 한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도화선에 불붙여
윤 전 대통령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박근혜 정부 집권기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었다.
수사팀장으로서 그해 10월 서울 고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윗선의 부당한 수사 지휘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때 남긴 말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장 '항명' 파동으로 징계받고 한직을 돌았다. 그러던 중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을 맡으며 복귀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어져 2017년 5월 조기대선의 문을 연 장본인이 됐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박 전 대통령의 대구 사저를 찾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도 초청하는 등 여러 차례 회동을 통해 관계 회복을 모색했다.
◇ 조국 수사로 검찰총장 직무 정지
문재인 정부의 개국 공신이나 다름없던 윤 전 대통령은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윤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중용했다. 이후 2년여가 지난 후에는 검찰총장으로 발탁돼 정점을 찍었다.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하며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한 말은 당시 정권에 부메랑이 됐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취임 두 달여 만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일가를 수사했다. 조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씨는 구속기소 됐고, 조 전 장관도 결국 지난해 12월 딸의 입시 비리로 수감돼 의원직까지 잃었다.
윤 전 대통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까지 파고들었다.
조 전 장관에 이어 2020년 1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추미애 의원은 그런 윤 전 대통령을 막아서려 했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감찰을 통해 정직까지 내린 게 대표적이다.
그럴수록 윤 전 대통령 인기는 올랐고, 문재인 정부는 예상보다 강한 역풍을 맞아야 했다.
◇ '어퍼컷'으로 용산 시대 개막…무속인 개입설 등 의혹 불씨도
윤 전 대통령은 결국 검찰을 떠났다. 퇴직 후 석 달간 물밑에서 대선 준비를 이어갔다. 정권교체를 앞세워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경선을 거쳐 2021년 11월 대선 후보로 당선됐다.
탄탄한 지역 기반이나 당내 강력한 우군이 없던 윤 전 대통령은 유세를 거듭하며 지지세를 끌어올렸다. 이때 등장한 어퍼컷 세리모니가 지지층에는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외연 확장이 필요했던 윤 전 대통령은 사전 투표 직전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단일화를 성사하며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윤 전 대통령은 청와대 대신 국방부 자리로 대통령실을 옮겨 '용산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이후 탄핵 국면에서는 관저 입지 선정 과정에서 무속인 개입설을 포함한 숱한 의혹의 불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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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컷 세리머니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연합> |
◇ 이승만 정권 이후 최다 거부권 행사…김여사 의혹 등 악재 잇달아
집권 후는 순탄치 않았다. 당정 관계가 삐걱거리자 '정치 초보'인 윤 전 대통령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 대표가 연달아 바뀌며 초래된 비상대책위의 상시화가 그 결과였다.
여소야대로 시작한 정국은 지난해 4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대패하며 야당이 압도하는 상황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각종 특검법과 당시 여권과 상충하는 법률안으로 휘몰아쳤고, 윤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막아섰다.
취임 후 무려 25건의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45건 이후 최대일 만큼 여야 협치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여기에 김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까지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여권에서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이나 사과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됐지만, 윤 전 대통령은 완고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질문에 제한을 두지 않는 '끝장 회견'을 열어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실기했다는 지적이 많았고,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에도 역부족이었다.
◇ 비상계엄으로 추락…탄핵소추 직무정지 이어 파면
그러자 '강골 검사'였던 윤 전 대통령에게 불통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해지고, 점차 고립무원에 빠지는 형국이 됐다.
극으로 달하던 갈등은 지난해 12월3일 감사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로 정점을 향해갔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바로 그날이었다.
결과적으로 야당의 정치 공세로만 여겼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결심을 굳힌 게 이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추락의 시작이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1월15일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국가 원수의 고유 통치 권한으로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방어벽을 쳤으나 계엄의 후폭풍은 이를 넘어섰다.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던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구치소에 수감된 채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계엄은 야당의 입법 폭거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항변했으나, 결국 파면되며 자멸하고 말았다.<연합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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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하는 윤 전 대통령. 사진=연합> |
거제저널 gjjn32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