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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영식 신부 선종

기사승인 2019.10.19  20: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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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은퇴미사 당시 김영식 신부. 출처=가톨릭평화신문>

1970~80년대 경남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던 김영식 신부(알로이시오‧70)가 선종(善終)했다.

천주교 마산교구청은 김 신부가 19일 오전 1시께 선종했다고 밝혔다.

김영식 신부는 2011년 1월 2일 사목 중이던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교구장 안명옥 주교 집전으로 은퇴식을 가졌다

당시 나이는 62세였지만, 2001년 뇌출혈로 쓰러져 6년 간 요양생활을 한 그는 신자들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은퇴 결심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은퇴 이후에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최근까지 투병생활을 해왔다.

김 신부의 빈소는 천주교 마산교구청 강당에 차려진다. 장례미사는 21일 오전 10시 마산 주교좌(主敎座) 양덕동성당에서 배기현(콘스탄틴) 주교의 집전으로 열린다. 장지는 고성 이화공원 천주교 성직자묘역이며, 삼우미사는 23일 오전 11시 묘역 현지에서 열린다.

김 신부는 사회·정치적 격변기였던 1970~80년대 경남지역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의 선봉에 서 왔다. 서울에 함세웅·문정현·문규현 신부, 부산에 송기인 신부가 있었다면, 경남에는 김영식 신부가 있었다.

김 신부는 당시 서울 등지에서 학생·노동·재야운동 인사들이 수배되어 도망을 오면 종교를 가리지 않고 밥을 먹여주고 재워 주는 등 도와 줘 늘 국정원이나 경찰의 요시찰 대상 주요 인물이었다.

1987년 진주 장재동 본당 주임 시절엔 경남지역 '6월 민주항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김 신부는 2007년 1월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경남추진위원회'가 결성될 때 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고인은 2010년 8월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천주교정의구현 마산교구사제단이 창녕함안보 공사 현장에서 열었던 "4대강사업 즉각 중단과 환경보존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해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4대강사업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기도하기도 했다.

김 신부와 노동·인권운동을 함께 하며 가까이 지냈던 허성학 신부는 "김 신부는 평생을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이상 더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느냐"며 슬퍼했다.

권영길 전 국회의원은 "신부님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굉장한 원칙주의자셨다. 정권과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항상 굽힘없이 당당하게 나아갈 것을 강조하셨던 분“이라고 회상 했다.

故 김영식 신부는 1949년 4월 25일 고성에서 태어나 서울 성신고등학교, 광주가톨릭대학교를 나와 1977년 7월 5일 박정일 주교의 집전으로 마산 남성동성당에서 사제 수품을 받았다.

고인은 1985년 1월 거제성당 주임신부로 2년간 사목 당시, 군사정권의 노동운동 탄압이 고조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삼성중공업을 비롯해 많은 거제지역 노동·인권운동가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다.<수정>

※선종(善終)
한국 천주교에서 착하고 거룩하게 삶을 마친 성직자 등의 별세를 이르는 말이다. 즉 임종 때 병자성사를 받아 대죄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으로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다.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거제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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