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보기 칼럼] 서영천 대표기자
거제저널은 칼럼 형식의 「시정잡기(市政雜記) 上·下」 두 편을 연재합니다. 박종우 거제시장 취임 후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거제시가 다듬어 온 조직 개편 윤곽이 드러나고 이에 따른 대규모 승진·전보 인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을 통해 공직사회 저변(低邊)의 퇴행적·적폐적 인사 풍토를 짚어보고 새해에는 더욱 신뢰받는 행정기관으로 거듭나길 기대합니다. 이 기사는 2019년 11월에도 보도된 적이 있으며, 일부를 재편집 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
<과거 인기드라마 '허준'에서 열연했던 탤랜트 임현식 씨. 그의 극 중 명대사 "줄을 서시오!"는 유행어가 됐다. 출처= Daum> |
- 줄 안서도 되는 거제시 공직 문화 조성해야 -
세계에서 한국인만큼 3연(三緣)에 집착하는 민족도 없다. 3연은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을 뜻한다.
혈연은 가족이나 친인척이라는 천부적(天賦的) 관점이니 여기서 더 논할 필요가 없을 듯 싶다. 그러나 지연과 학연이 우리 사회에서 직·간접으로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한 국책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행정기관이나 공기업 등 특정분야를 상대로 지연과 학연이 승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 이상이 '매우 크다'고 응답했다는 결과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과거 거제에도 근무한 적이 있는 경찰의 한 '경정(과장급)'은 평소 충청도가 고향으로 모두 알고 있었고 실제 향우회에도 간간이 참석할 정도였다. 이 양반은 거제경찰서 과장을 거쳐 승진을 한 후 지방청 고참 계장으로 있었으나 총경 승진 인사에서는 번번이 물을 먹어 실의에 빠졌다.
그러다 어느 해 정권이 바뀌었고, 그가 특정 지방 향우회에 열심히 나간다는 얘기가 들렸다. 심지어 바뀐 정권 출신 지방 쪽으로 호적까지 바꾸었다는 입방아도 떠돌았다. 결국 그는 총경으로 승진해 경찰서장까지 잘해먹고 무사히 퇴직했다. 물론, 그가 진짜 호적을 바꿨거나, 그 때문에 승진했다는 건 순전히 추측일 뿐 진실은 알 길이 없다.
박종우 거제시장이 지난 7월 취임한 이후 외부 용역을 통한 조직개편 윤곽이 최근 대부분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여느 공직사회와 마찬가지로 연말연시 승진·전보 인사를 앞둔 시청 내부는 적잖은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의 꽃'이라는 5급 사무관 자리를 넘보는 6급 주사들의 눈치는 치열함을 넘어 눈물겹기까지 하다. 정년이나 공로연수 등으로 비는 자리가 현재로선 3자리 뿐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승진인사의 필수 단계라 할 수 있는 '근무성적평정(근평)'을 두고 요즘 노조게시판은 직원들의 불만섞인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근평이 승진·전보 등을 결정 짓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공무원들에겐 민감한 관심사다.
좀 웃기는 건, 일부 특정 지역 출신자들은 느긋한 표정인 반면, 타 지역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초조하다 못해 이리저리 인연의 끈을 저울질하며 안절부절 한다는 뒷소문이다. 특정 지역은 현직 시장의 고향을 뜻한다.
민·관선을 막론하고 역대 거제시장 시절에도 학연(學緣)과 지연(地緣)을 통한 '줄서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 얼굴이 바뀔수록 더 했다. 어떤 때는 역으로 시장측에서 노골적으로 공무원들에게 '줄세우기'를 부추기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으니.
아직도 상당수 공무원이나 시민들은 능력이나 평판 보다는 시장과의 지연이나 학연 여부에 따라 승진이 좌우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아쉽고 서글픈 부분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떤 공무원은 상위직급 수행 능력은 커녕, 지탄을 받거나 징계를 받아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과장, 국장 승진을 거듭해 공직사회와 지역 여론이 들끓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승진자는 대개 당시 시장이나 처갓집과의 지연, 학연은 물론 특히 선거에서 크게 도왔던 이들의 청탁과 맞물려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중에는 소위 빽(?)을 써 새치기 승진했던 직원들도 꽤 있었으나, 영화(榮華)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승진이 오히려 화가 될 때도 있었다. 나이가 차 승진해 다행히 퇴직 때까지 인연 있는 시장과 함께 하면 더 없이 좋다. 그러나 승진 좀 빨리 했다고 나대다가 나중에 다른 당이나 다른 지역 출신 시장이 덜컥 당선되면 여지없이 설움(?)을 당했다.
과거에도 그런 공무원 몇몇은 청내(廳內) 따돌림의 대상이 돼 한동안 변방으로 내몰리며 고생깨나 하는 꼴을 심심찮게 봐 왔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과 견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보스 앞에 눈치도 없이 줄 잘못 서고, 눈에 나면 다음 공천은 글렀다. 늘 찬밥 신세로 권력 주변을 속절없이 떠돌다가 어느 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그러고보니 요즘 친윤(親尹)·비윤(非尹), 친이(親李)·비이(非李)를 들먹이는 졸개들의 아부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총선이 1년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배고픈 시절 어렵게 군대 생활을 한 남자들은 줄을 잘 서야 덜 얻어맞고, 뺑뺑이는 딱 한번만 돌았다. 어쩌다 재수 좋으면 빵 배급도 넉넉하게 탔던 그 요령을 잘 알게다. 그런게 통하던 시대가 과연 정상적인 군대고, 사회였는지 굳이 되새길 필요조차 없다.
또 한가지, 최근들어 눈여겨 볼 희한한 현상이 있다. 각종 선거때마다 거제시 사무관급 이상 퇴직 공무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간부 출신 몇명은 꼭 특정후보 선거캠프에 가담해 눈물겨운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선거 결과 운이 없어 지지후보가 낙선해도 별 손해 볼 것도 없다. 다만, 밀었던 후보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되면 '공돌이 백수'의 새로운 삶이 열린다. 남이야 뭐라하든 그때부터 기필코 한자리 꿰차려고 안달이 난다.
물론 공무원 출신이라고 정치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똘망한 후배 공무원들의 눈에는 그저 '꼰대들의 발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참으로 안쓰럽고 부질없는 노욕에 불과해 보인다.
줄을 서시오~~!! 누구는 "과거 인기드라마에서 생존에 필요한 양식과 약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했던 그때 운명이나, 현대 공직사회에서도 줄을 잘서야 출세하는 건 엇비슷 하다"는 말도 한다.
박종우 시장은 시청 밖에서 나름대로 공직사회를 보는 잣대를 가졌을게다. 그런 그가 지난 6개월동안 공직사회 내부에 들어와 실체를 경험했다. 충분한 시간이다.
요즘 시청 안팎에선 웬만한 부탁에도 박 시장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한다고 들린다.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소신이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 시장이 어떤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도 정말 굳은 의지로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일 잘하는 공무원들이 또 다시 줄을 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사(人事)는 잘해야 본전(本錢)이다. 시스템은 전혀 문제없다. 다만, 시스템을 운용하는 건 사람이다. 이제 사람이 바뀌었으니 공직사회도 변하는 게 순리다.
그게 바로 박 시장이 줄곧 주창해 온 '거제 미래 100년 디자인'의 밑바탕을 직접 그릴 공직사회에 가장 기초적이고 혁신적인 주춧돌을 놓는 과업이다.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