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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수국 면장님! '

기사승인 2022.06.30  15: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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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거제의 여름꽃으로는 수국이 자리 잡았다. 거의 20년은 넘은 듯하다.

거제 바다를 배경으로 한겨울의 동백꽃, 봄날의 유채꽃과 수선화, 여름날의 수국들의 사진 작품들은 거제의 대표적인 풍광으로 알려져 있다.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처음 수국으로 마을 축제를 연 곳이 저구마을이니 그곳이 수국의 원조쯤 된다고 봐도 되겠다.

보라색부터 남색, 노란색, 붉은색 등 꽃 색도 다양하고 꽃잎의 배열과 잎 숫자도 다양해서 종류만 거의 수십 종에 이른다.

백과사전에는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일본이 중국 수국을 가져다 이리저리 교배시켜 오늘날의 원예품종으로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주로 북반구의 남쪽 지방에 널리 분포돼 있다.

원래 토양의 양분과 물, 공기를 먹고 마신 꽃들은 모두 개별적인 색깔과 모양을 갖는데, 그 과정을 설명하는 식물학자도 "유전인자에 스스로 그렇게 피게 되어 있다"고 하니 답답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비롭다.

같은 나무라도 다른 해에 전혀 다른 색의 수국을 피우는 것은 예사이다. 온도와 수분, pH, 그리고 일조량에 따라 다른 색깔로 피는 수국의 매력은 덤이다.

엊그제 가 본 남부면의 저구항과 도로변에는 수국이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모종을 판매한다는 안내판은 올해 처음 봤다.

수국은 품종에 따라 앙증맞고 여리디여린 꽃이기도 하고 때로는 힘차고 굵은 꽃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줍어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꽃잎을 여는 점은 다 똑같다. 질 때도 그렇다. 흉한 꽃 이파리를 숨기거나 가리지 않는다.

동백꽃은 통째로 자진하고, 수선화는 개별적으로 시나브로 떨어지는 반면, 수국은 스스로 떨어지지 않는 끈질긴 꽃이다. 다음 해에 새 꽃이 필 때까지 마른 꽃잎을 달고 있을 정도이다.

하긴 질 것을 걱정해 어찌 개화할 것이며, 늙어 추해질 것을 두려워해서 어찌 성숙한 중년의 삶을 맞이하겠는가.

필자는 길가나 마을의 수국꽃밭을 볼 때마다 한 사람을 떠 올린다. 바로 김용운 전 면장이다. 그는 옥포1동 동장직을 끝으로 공직에서 퇴직한 지 9년이 됐다.

고향인 지세포에 위치한 자신의 땅에서 수국을 꺾꽂이해 2~3년 차가 되면 여지없이 무료로 분양한다. 그것도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공공시설에 나눠서 많은 사람이 꽃을 감상하게 한다.

그동안 약 2만주의 수국 모종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수변공원, 거제대학교, 장승포동, 옥포동, 일운면의 국도변 등 무료 분양했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상당하다.

김용운 전 면장은 ”봄꽃이 진 후 삼복더위에 사람들이 지쳐가는 여름날에 수국의 가치는 높다. 개별로 심겨있는 모습보다는 군집을 이룰 때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이 더불어 연대해 함께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그 개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노동의 대가는 다 돌려받았다고 생각하며 나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3천평의 땅에 식재할 상사화 모종이 자라고 있는데 이것 또한 모두 무료 분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국뿐만 아니라 여러 농작물도 함께 길러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다. 사실 농사일이란 땅이 있기에 가꾼다고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고된 과정이다.

그러나 그는 일차 산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아무런 경제적 이익 없이 나눔 활동을 한다.

누군가는 우리 땅에서 우리 농작물을 키우며 지켜가야 한다. 기후 위기나 감염병의 창궐 등으로 국제 교역이 막히기라도 하면 언제든지 식량 위기를 맞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곡물 자급자족률이 20%가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텃밭이나 소농들의 영농 활동은 수치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공익적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그 선봉에 선 김용운 전 면장의 인류애는 더 돋보인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사실 그들은 단체장보다도 해박하고 행정력이 뛰어나다. 대신 이타심이 넘쳐야 면장이라도 한다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혹시 당신이 운전하다가 만나게 되는 소담스러운 수국 더미가 그분의 수국일지 모른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에 기꺼이 자신의 노력과 재산을 내놓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는 한 병의 까스명수이고 박카스이다.

일상이 힘들면 거제도의 남쪽 해안가로 가 보라. 수국과 수국을 가꾼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거제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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