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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은숙] "너구리가 나타났다"

기사승인 2024.08.25  0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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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은숙 / 전 경남도의원, 현 경남기후학교·농어촌희망연구소 대표

국도 14호선은 거제시 남부면 저구 사거리에서 시작해 통영시, 고성군, 창원시, 김해시,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주시를 거쳐 포항까지 이르는 318km의 도로다.

지역의 특성상 동남권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공업 도로의 성격을 띠지만 일운면부터 남부면까지는 관광도로에 속한다.

이 국도 14호선이 지나는 와현고개 정상에는 와현마을로 내려가는 진입로와 석유개발공사로 가는 시도가 각각 갈라진다.

필자가 15년째 살고 있는 집은 와현마을로 접어드는 시도 변에 있어서 서이말 등대가 위치한 야산과 접해있는 지형이다.

그러다 보니 겨울철에는 가끔 멧돼지가 내려와 텃밭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고 고라니도 출몰해 텃밭의 상추를 뜯어 먹고 연못에서 물을 먹고도 간다. 그때마다 진돗개가 짖지만, 야생동물들은 별로 겁을 내는 것 같지 않다.

희한하게 작년부터는 너구리가 나타났다. 집 마당의 데크까지 내려와서 태연히 고양이 밥을 먹고, 때론 고양이 집에서 자고 갈 정도로 넉살스럽다.

작년에 왔던 놈과 올 초봄에 왔던 놈이 다르다. 엊그제부터 하루에 두세 번씩 방문하는 너구리는 또 다른 개체인 것 같다.

그런데 오는 놈마다 행색이 말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너구리 모습이 아니라 털이 빠지고 야위어서 집단에서 소외당한 외톨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초췌한 행색이다.

너구리는 살기 위해서 사료를 먹으려고 덤비고 고양이들은 영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견제하다 보니 험악하게 대치하는 때도 종종 생긴다.

다행히 격렬한 몸싸움 직전에 알아서 멈추는데 심해지면 필자가 개입해 상황을 종료시키기도 한다.

야생동물은 광견병 바이러스나 피부병균을 가지고 있기 십상이라서 접근을 금지 시키지만, 허기가 진 너구리가 불쌍해서 멀찌감치 떨어진 텃밭 근처에 사료를 따로 두기도 한다.

옛 어른들은 집에 든 짐승은 잡지 않고 곱게 보내야 복을 받는다고 말했지만, 집고양이가 있는 집에 야생동물이 출입하는 것은 왠지 찝찝하다.

어째서 최근에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일까?

집 뒤의 야산은 개발제한구역이라서 공사 현장도 없고 산림 훼손 행위도 없어 서식지를 잃을 상황도 아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협적인 상황이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사실 그동안 지구촌을 위기에 빠뜨린 역병의 숙주는 전부 야생동물이었다.

몇 년 전 지구를 초토화했고 지금도 발병하고 있는 코로나19도 숙주인 야생동물을 통해 발병했다.

박쥐는 설치류도 조류도 아닌 포유류이다. 무려 40년을 산다는 박쥐는 약 137종의 감염성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그중 박쥐의 일부 바이러스가 여러 숙주를 통해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다.

사향고양이를 통해 사스가, 낙타를 통해 메르스가, 우한의 천산갑을 통해 코로나가 창궐했다는 사실은 과학계와 의학계가 입증했다.

물론 인간의 폭력적인 개발 행위로 인해 야생동물과 인간, 가축 간의 사회적 거리가 가까워진 것이 원인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개발 행위로 인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전염병이 창궐했다면 원인 제공자인 인간이 먼저 성찰해야 한다.

요즘도 산림이나 농경지에 개발되는 시설 대부분은 주거 시설이 아니라 관광, 휴양, 레저 시설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고 있고 지구 상승온도의 임계치인 1.5도가 눈앞에 와 있지만 무모한 개발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 거제뿐만 아니라 전국 각처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개발의 목적은 일자리 창출, 인구 감소 현상 억제, 경제 활성화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고 개발업자가 말할 때 언론과 주민, 정치인들은 손뼉을 치며 칭찬한다.

염천의 날씨 속에서도 초췌한 몰골로 민가를 찾는 너구리를 보며 미래를 걱정한다.

자연의 경고는 늘 우리 곁에 있다. 분명히 너구리는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지구의 위기를 가속하는 인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해보인다.

그런데도 인간인 필자는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거제저널 gjjn3220@daum.net

<저작권자 © 거제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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