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대표 관광지인데도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했던 '수선화 천국' 공곶이가 새단장에 들어갔다.
15일 거제시는 공곶이에 수선화 구근 7만여개를 심어 내년 봄 만개한 노란 수선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일운면 와현리 예구마을 고갯마루 넘어 바닷가에 위치한 공곶이 수목원은 '거제 9경' 중 한 곳으로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황무지였던 이곳을 지난 54년간 손수 가꾸어 왔던 강명식 할아버지가 지난 5월 타계했다. 이후 지상악(89) 할머니도 노환으로 다리가 아파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자 이곳을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공곶이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관광명소로서의 이름이 퇴색됐다는 지적과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거제시는 토지 소유자인 강 할아버지 가족들과 의논 끝에 앞으로 3년간 관리를 맡기로 하고, 지난 10월 거제시의회에 2차 추경을 통해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시 농업기술센터는 지난 10월부터 한달간 주변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는 한편, 최근 들어 7만여개의 수선화와 백합 구근을 심느라 연일 직원과 인부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강윤복 농업기술센터소장은 "공곶이 재단장을 위해 여러 직원들과 근로자들이 함께 애쓰고 있다"면서 "내년에는 수선화가 만개해 예전처럼 수선화 천국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공곶이'는 지리적으로 일운면 와현리 예구마을에 속한다. 예구마을 선착장에 차를 두고 오르막 길을 따라 고갯마루를 넘어가면 급경사지 끝 해변에 굵은 자갈밭 일원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왼쪽 끝에는 서이말 등대가 있고 앞쪽엔 내도(일명 안섬, 인근 외도는 밖섬이라 함)가 위치해 있다.
공곶이와 내도 사이 좁은 바닷길은 대한해협과 맞닿아 있어 평소 바람과 물길이 워낙 거세 웬만한 배로는 빠져 나가기 힘들 정도다. 이곳은 인적이 드물고 외딴 곳이다보니 동백, 후박나무 등이 울창할 정도로 천혜의 자연 경관이 잘 보존돼 있다.
역사적으론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8년 탄압을 피해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든 곳이다. 한국 천주교 순교 성인으로 시성(諡聖)된 거제 '윤봉문' 형제도 이 곳에 피신해 신자들과 힘겨운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런 내력 때문에 예구마을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들이다. 몇년전부터 거제시가 공곶이 주변을 트레킹 코스인 '천주교 순례길'로 조성해 놓아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공곶이'는 천주교 신자인 진주 출신 강명식 할아버지가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눈여겨 봐둔 곳이다. 그러다가 1957년 예구마을 처녀로 같은 천주교 신자였던 지상악 할머니와 선을 본 후 10여 년간 마산 등 도시에서 돈을 벌어 1969년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터를 잡았다.
강 할아버지 내외는 거의 맨손으로 황무지였던 급경사지를 계단식 밭으로 일궈 그동안 번 돈으로 2천여 그루의 감귤나무를 구입해 심었다. 그러나 1976년 겨울 한파로 모두 얼어 죽는 아픔을 맛봤다.
빈털털이가 된 부부는 그래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감귤나무를 뽑아낸 자리엔 추위에 강한 동백나무, 팔손이나무 등을 손수 심었다. 또 밭에는 수선화를 비롯한 각종 꽃을 심어 수십년간 정성 들여 가꿔 오늘의 공곶이 수목원이 되기에 이르렀다.
내도(內島)가 코 앞에 보이는 강 할아버지의 집 주변 밭에는 이른 봄이면 연노랑 수선화가 온통 지천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을 선사해 관광객들로부터 ‘수선화 천국’이란 별칭이 붙었다.
<지난 5월 작고한 강명식 할아버지가 예구마을 출신 아내 지상악 할머니와 손수 일군 수선화 밭. 봄이면 주변이 온통 노란 수선화로 물들어 방문객들은 이곳을 '수선화 천국'으로 부른다. 출처=거제시 홈페이지> |
<수선화가 만개한 공곶이의 봄> |
서영천 대표기자 gjjn3220@hanmail.net